강화의 고인돌 문화
작성일  2007-01-31 조회수  6922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는 거석 문화의 하나로, 규모가 큰 것은 덮개돌이 수 십톤이 되는 것도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므로, 이러한 무덤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 조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신분의 상하가 나타나는 계층 사회가 성립하였다. 부족을 통솔하는 족장(군장)은 농업 생산이 증대함에 따라 재산을 늘리는 한편, 청동제 무기를 이용하여 이웃 부족을 정복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다.
족장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 등 종교 의식도 주관하여 더욱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를 제정 일치 사회라고 한다. 족장이 죽으면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거대한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을 만들고, 청동검, 청동 거울 등을 함께 묻었다.
강화도지역에서 지금까지 조사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선사유적이 바로 이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크게 탁자식과 개석식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주로 하점면(부근리, 삼거리, 신삼리, 신봉리, 이강리, 창후리), 양사면(교산리), 송해면(상도리 황촌부락, 하도리, 양오리), 내가면(고천리, 오상리, 장정리) 등지에서 대단위로 조사되었다. 이들 외에도 강화읍 대산리나 양도면 도장리 어두부락등지에서 일부 확인되긴 하였으나 그 수효는 전자들에 비해 매우 미약한 편이다. 지석묘가 입지하고 있는 지역은 산 정상부나 능선상 혹은 평지에서 주로 살필 수 있다.
이 시기의 유물은 석부나 석촉, 석검, 석착 등의 석기와 각형토기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경우 발굴조사보다는 지표수습을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에 확실한 출토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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