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학파의 중흥- 이충익의 양명학적 사고 -
작성일  2009-11-03 조회수  4721
이 글은 이충익의 철학사상을 다룬 글이다. 이충익은 중국 양명학자 이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충익은 젊었을 때 이지의 문장을 통해서 글을 읽혔으며, 이지가 절을 세운 것처럼 자신도 마니산에 절을 세웠다. 그러나 이충익은 그 이후 이지의 문장을 한계를 알았고, 이지가 공리주의적 역사관을 제시하자 그의 역사인식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조선 양명학자들은 이지를 비판하지만, 이충익만큼 이지의 행위를 따른 적은 없었다. 이지는 개인적인 자유분방함으로 통하여 그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충익은 이러한 자유를 본받고자 했지만, 그것이 좌절된 이후 사회전체적인 차원을 고려하기 하였다. 이는 민간강학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꿈꾸는 중국 양명학과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이충익은 불교에 대한 관심은 조선의 어떤 학자보다도 남달랐다. 유식, 중관, 선을 두루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심은 단순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동반하고 있다. 그는 불교의 수행으로부터 인간 존재의 불안으로부터의 구원을 찾고자 한다. 양명학에서는 그것을 인간 본성에서 찾고자 한다. 이충익의 또 다른 관심은 고증학이다. 그는 경전이해의 근거가 되는 언어와 문자에 대한 고증학을 탐구하였다. 이는 양명학의 합리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충익의 윗세대인 이광사 이광신등은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문제삼았다면 이충익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양명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불교적 사유, 고증학적 사유를 하였던 것이다. 이는 강화양명학이 지니는 또 다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조남호) 인천학연구 9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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